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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파머스 리포트[굿파머스 리포트 19호] 굿삐의 평양취재 5편: 평양에 사는 타조들

202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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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에 관한 내용은 픽션이며, 문헌조사를 바탕으로 해당 내용을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 소장

여로의 피곤이 겹쳐서 인가 꿈도 없이 푹 자고 일어나 끙 하고 기지개를 하며 창문을 열었다. 함박눈이 내리고 내려 거리와 마을 주택의 지붕에 하얀 눈이 쌓였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쪽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눈을 치우고 자전거에 짐을 싣고 급하게 거리로 나서는 모습도 보인다.

 

 

서울에서는 근래에 들어와서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평양은 38도선 이북이라 그래도 좀 눈이 오는 것 같다, 혹시 오늘 서울도 눈이 왔으면 평양만큼 쌓였을까? 정말 궁금한데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평양과 서울의 기후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생각과 그러고 보니 서울-평양이 그리 멀지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한 구석이 아려왔다.

전선줄에 참새가(그러고 보니 참새를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않아서 재잘거리다가 어디선가 날아오는 돌조각에 놀랐는지 작은 날개를 퍼덕이며 급히 날아갔다.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보니 일곱이나 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애가 고무총을 들고 아쉬운 듯 주먹으로 코물을 훔치면서 달아나는 참새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느 집 마당에는 어린 두 형제가 썰매를 찾아 정비하며 신나게 재잘거린다. 연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이 더 많이 와 지치도록 썰매놀이를 할 거다. 아마도 저 아이들은 절대로 지치지 않을 수도 있다.

12월 중순이 지나 연말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날씨도 영하로 떨어졌다. 이제는 완벽한 겨울이다. 올해 서울에서 이러다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그러고 보니 평양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풍경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챙기며 출발 준비가 끝날 무렵 안내원이 문을 조용히 두드리고 들어왔다.

나는 들어서는 안내원에게 물었다.

“평양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뭐하나요?”

안내원의 눈이 커다래지더니 정색하며 답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명절로 쇠지 않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고 얼결에 “왜요?”하고 튀어나오는 말을 삼켰다. 아 여기서는 크리스마스를 명절로 쇠지 않는구나, 충격이다. 인도차이나반도사람들이 여름 옷차림으로 냉커피를 마시며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을 보며 더운 나라의 크리스마스도 제 멋이 있다고 놀라던 생각이 나면서 온 지구촌 사람들이 즐기는 크리스마스를 유독 평양만이 …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면서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서울에 가고 싶어졌다.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풍경의 크리스마스를 기대 했는데 망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

오늘은 타조목장에 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취재준비를 하면서 평양가면 타조목장을 꼭 보고오라는 부탁도 있어 도착하자 바로 신청했는데 오늘 승인되었다. 목장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형제산구역 신미리에 있단다.

 

 

형제산구역은 평양시 서쪽에 위치한 구역으로 동쪽은 평양시 룡성구역과 서성구역, 남쪽은 평양시보통강구역과 만경대구역, 서쪽은 평안남도 대동군, 북쪽은 평양시 순안구역과 접해 있다. 현재 행정구역은 15동 3리로 되어있다. 신미동(新美洞)은 형제산구역의 북쪽에 위치한 동이다. 본래 평안도 평양부 지안부 부산방의 지역으로서 봄이 오면 온 마을에 과일 꽃이 만발하여 늘 새롭게 아름다워진다 하여 신미동이라고 하였는데, 1896년에 평안남도 평양부 부산면 신미동으로 되었고 1910년대에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 신미리로 되었다가 1952년 군, 면, 리 대페합에 따라 부산면 신안리, 신흥리와 병합하여 순안군 신미리로 되었다가 1960년에 형제산구역 신미리로 되면서 평안도 순안군 대양리 일부를 흡수하였으며 1991년에 신미동으로 개편되었다.

눈이 온 뒤의 청신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약 1시간 정도 눈길을 달려 목장에 도착했다. 눈빛이 날카롭고 눈썹이 짙은 임꺽정이를 많이 닮은 목장장이 환하게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배인은 어느 공장에나 다 있는 현지지도 사적비(내가 평양에 와서 본 모든 공장들에 다 이런 碑가 있었음)에 우리를 안내하며 공장의 연혁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1997년 11월, 김정일은 세계 가금(嘉禽)업 발전의 추세를 볼 때 타조를 기르는 것이 경제적이며 타조생산품이 인기가 높다고 하면서 북한에서도 타조를 사육해볼 것에 대해 언급 하였다고한다. 현실적으로 타조를 인공적으로 기르기 위해서는 초기 투자가 많이 들고 넓은 타조사육장을 필요로 하고 있어, 일부 나라들에서 타조사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제한된 범위에서 소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당시 북한은 타조사육에 대한 구상을 하면서 알 생산만이 아니라 타조고기와 그 가공기술 전수를 위해 축산기술자를 해외에 파견하여 타조사육에 대한 경험을 연수하도록 하면서 타조사육을 외화벌이를 위한 중요정책과제로 선정하였다.

이에 따라 1998년 5월부터 타조목장 건설이 시작되었고 평양시 교외인 형제산구역 신미리에 1998년 9월 북한노동당 39호실 산하 대흥관리국에서 총 건평 2만㎡의 타조목장을 건설하였고 이어 다음해 4월 14일 역시 신미지구에 軍산하의 연풍관리국에서 군인들을 동원하여 총 부지면적 40여만㎡에 달하는 타조목장을 건설 하였다. 연풍관리국 신미리 평양종합타조목장은 1999년 9월 40여만㎡의 부지에 총 건평 8만 5120㎡, 타조 놀이장 23만 7570㎡의 규모로 건설되었다. 2002년 타조 마리 수는 약 1,600마리로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목장에서 사육하는 타조 1마리 무게는 100~120kg으로 어미 타조 1마리 가격이 약 1만 달러나 한다고 한다. 타조가죽 1장의 크기는 약 1.3㎡이고, 타조 알의 평균무게는 1.6kg정도 나간다고 한다. 2000년 12월 7일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문했다고 한다.

공장 지배인은 타조를 사육하는 이유로 병에 잘 걸리지 않고 다른 家禽에 비하여 사료소비량이 적어 사육비용이 적고, 고기와 알, 질 좋은 가죽과 털을 얻을 수 있어 수익성이 높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타조 가족은 소나 악어가죽에 비하여 질기고 부드러워 고급신발, 장갑, 옷 등을 만드는데 사용되고 고기는 저단백질, 저콜레스테롤로 소 등심보다 질이 좋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였다.

아래의 사진은 1999년 4월 14일 “노동신문”에 실린 평양타조목장 전경이다.

 

 

 

 

지배인의 설명에 의하면 목장을 설립하면서 종축구입은 국내구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흥관리국이 처음 특별한 지원을 받아 해결하고 일부는 중국을 통하여 구입하고 나머지는 자체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조총련 금강산가극단 후원회 박정애 부회장이 270여 마리의 타조를 목장에 기증했고, 그 결과 형제산구역 신미리에 종자타조목장이 건설됐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 부회장의 `애국적 소행'을 높이 평가해 「박정애 애국타조목장」으로 부르도록 했으며 현지에 `충성비'도 건립해주었다.

지배인은 얼마 전 목장의 개건현대화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목장의 올해 생산량이 지난해 보다 1.5배로 성장했다고 자랑했다.

지배인은 “우리 평양타조목장에서는 지난해에 특색 있는 타조사 110여동과 최신설비들로 장비된 먹이생산 및 고기가공기지, 가죽가공기지, 타조제품제작소 등을 갖췄다."며 "종합적인 타조생산기지로 개건된 후 고기와 알, 고기가공품, 알 및 뼈 공예품, 가죽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하여 "종자육종체계와 계절별에 따르는 과학적인 사양관리방법, 동물성 단백먹이 생산 공정을 새롭게 확립하고 수의방역에 힘을 넣어 새끼타조육성률을 훨씬 높이는 등 많은 성과를 이룩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살던 타조들이 아시아의 평양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저렇게 생산된 타조고기와 알 그리고 제품들이 실제로 해외시장에서 인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안내원은 저런 타조목장이 황해북도 연탄과 평안남도 개천에도 있다고 알려줬다.

 

최근 “80일 전투”가 진행된다고 하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타조목장에도 사료와 첨가제가 부족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환경에서 북한당국은 생산을 정상화하는 것이 갖는 중요성에 언급하고 재자원화사업에 주되는 힘을 넣어 국내원료들을 적극 이용하라고 강제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성과에만 관심이 있다면 다른 여러 가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유지하지 못한다. 성과를 원하는 경우는 변화를 통해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부담이 없을 때, 행위자들이 좀 더 편하게 해줄 때 밖에 없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평양을 떠난다. 평안도 취재일정이 잡혔다.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굿파머스 연구위원님의 출신지역에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함께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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